[리뷰] ‘버닝’…은유와 위축된 마음의 분노가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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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하우스필름, CGV아트하우스

*다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버닝’은 이창동 감독의 ‘시'(2010년) 이후 8년 만에 복귀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다’가 원작이다.

유통회사 아르바이트생 종수(유아인)는 특정 직업이 없다. 어느 날 일을 하러 갔다가 어릴 적 동네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게 된다. 아프리카 여행을 앞둔 해미는 종수에게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돌봐 달라는 부탁을 하고, 두 사람은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된다.

해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종수. 아프리카 여행에서 돌아온 해미는 그곳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종수에게 소개한다. 세 사람 사이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서래마을에 살며 특정 직업이 없는 부유한 벤의 모습과 어느 순간 그를 더 따르를 해미를 보고는 종수는 마음은 한껏 위축된다.

종수의 파주 고향 집에서 술과 마약을 하던 세 사람. 벤은 종수에게 자신의 비밀스러운 취미를 고백한다. 종수는 해미의 행동에 독설을 퍼붓고 그렇게 해미는 종수에게서 자취를 감춘다.

 

무기력한 표정부터 위축된 분노까지, 연기 스펙트럼을 넓힌 유아인

그야말로 파격이다. 유아인은 ‘버닝’에서 날것 그대로인 결핍으로 가득찬 종수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비우고 덜어내고 담백하게 연기했다.

이전의 유아인이 연기했던 다소 과잉된 캐릭터의 모습과는 발전된 연기 변신을 선보인 셈.

패션과는 동떨어진 극히 평범한 행색으로 어수룩한 말투와 흐린 눈빛으로 무장하고 남들에겐 보이고 싶지 않은 내밀한 욕구까지 남김없이 스크린에 쏟아부었다.

다만, 종수 캐릭터는 연민을 품을 만한 구석은 조금도 없어 보인다. 해미가 실종되기 전 굳이 그런 말을 했었나 싶은 대사와 해미가 사라진 후, 벤을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는 행동에서 말이다.

해미를 연기한 신예 전종서는 높은 노출수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위한 연기 열정을 불태웠다. 해미 캐릭터는 전종서가 가진 신비롭고 독특한 이미지와 잘 어우러졌다. 특히 전종서가 노을을 배경으로 춤을 추는 장면은 매우 아름답다.

배우 스티븐 연은 ‘버닝’을 통해 처음 한국어 대사로 연기했다. 정체불명의 벤을 무난하게 소화한 느낌이다. 다만, 유아인과 대화 하는 장면과 일부 상황에서는 다소 대사 톤이 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수많은 ‘메타포’를 품은 이창동 감독의 6번째 작품

‘버닝’은 극 초반부터 어디서 무언가 불쑥 튀어나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흡입력과 긴장감으로 영화를 안내한다.

여기에 인물의 표정을 빈틈없이 포착하며 따라붙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앵글과 카메라, 저녁노을과 새벽 시간에 촬영된 장면은 색다른 영상미를 선사한다. 특히 버스에서 해미를 포착하는 카메라 무빙과 해미의 춤을 실루엣으로 연출한 장면에서 두 거장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창동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버닝’은 좀 다른 방식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라고 언급하며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장르로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것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한 또는 이야기에 대한 영화”라고 작품을 소개한 바 있다.

그래서였을까. 영화 ‘버닝’은 ‘메타포(은유)’로 가득하다.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스토리라인이 명쾌하지 않고 모호하다.

해미의 고양이가 과연 존재했는지, 해미가 종수를 떠난 것인지, 벤이 해미에게 무슨 짓을 가한 것인지, 그래서 벤이 범인인지 등등 여러 상황과 추측만 남는다.

관객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영화는 전형적인 끝마무리로 매듭짓는다. 추측이 해결되지 않은 채 말이다.

 

이창동 감독은 ‘버닝’을 통해서 젊은 세대 이야기를 하려 했다. 결국은 감독 세대에서 본 지금의 젊은 세대들의 모습이 영화에 표현됐을 것이다. 주인공 종수를 관통하는 테마는 위축된 마음에서 비롯된 분노로 정리되는데, 그 분노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간 감독은 이전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고초를 겪었다. ‘버닝’이라는 신작이 나올 때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마음 고생도 심했을 것이다. 감독에게서 영화를 못 찍을 수도 있다는 ‘위축된 분노’가 ‘버닝’으로 표현된 것이 아닌지 조심스레 해석해 본다.

이창동 감독의 6번째 작품 ‘버닝’을 통해 불태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만들고 싶었던 건 과연 무엇일까. 분명한 건 감독의 전작들과는 결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과 여전히 ‘이창동 월드’는 변하지 않았다는 나름의 확신이다.

‘버닝’은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감독의 연출 의도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작품을 해석하고 싶어지는 영화라는 지점에서는 반가웠다.

겟잇케이 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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